(쓰던 도중에 인터넷이 튕길 줄이야...!)

디지털 미니멀리즘을 시도한지 벌써 몇개월이 지났고, 제대로 실천한지는 일주일정도 지났다.
모든 소셜 미디어를 끊었다. 전화와 문자, 지도, 배달앱, 음악, 라디오만 남겨놓고 다른 앱들은 모두 지웠다. 인터넷이 꼭 필요할때는 노트북을 이용하려고 노력 중이며, 유일하게 이용하는 미디어인 블로그도 노트북을 사용하여 글을 쓴다는 규칙을 세웠다. 음악과 라디오는 가끔 휴식시간에 사용하기 위해 남겨놓았지만, 어떻게 하면 휴식과 일과에 방해가 안되는 선에서 들을 수 있을지 감이 안잡혀서 이용하지 않게되었다. 그래도 조만간 이용규칙을 세워 볼 예정.
현재 스마트폰 이용시간은 많아야 30분을 넘기지 않는다. 평균 10분을 기록하고 있다.
유튜브, 게임, SNS라면 사족을 못쓰던 내가 소셜 미디어의 사용을 줄여야겠다고 결심한건, 여러 미디어에서 내놓는 자극적 이슈와, 그에 따른 사람들의 과격한 반응들을 보기가 힘겨워졌기 때문이었다. 불과 몇년전에는 내가 좋아하는 영상을 마음껏봐도 이상한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고, 싸움이 이렇게까지 흔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요새는 정말 보기가 힘들어졌다. 사람들은 영상과 글의 조회 수를 높이기 위해 정확하지 않은 정보들을 '나름대로' 정리하여 올리기 시작했고, 관심이 없던 주제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나도모르게 그 영상의 시청자가 되어 있었다. 댓글은 그야말로 콜로세움이었다. 사람들의 과격한 글들은 나까지 상처입히기에 충분했다. 트위터에는 나의 생각을 너무나도 많이 올렸다. 다른 사람들이 내 생각을 볼 수도 있다는 것이 항상 탐탁치 않았지만, 현업에서 근무하는 개발자들로부터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점, 기존의 일기보다 쉽고 빠르게, 순간의 정확한 내 생각을 올릴 수 있다는 점이 너무 큰 메리트로 다가와서 끊을 수 없었다. 누군가 나의 생각에 마음을 눌러주면 내 감정과 생각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기록중독자에게 트위터는 악마의 공간이되었다.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아갔고, 나의 깊은 생각까지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이 힘겨울 때가 너무 많았다. 재미를 추구하기 위한 나의 행동들은 더 이상 재미만을 불러오지 않았다. 재미를 대가로 많은 것을 바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정해놓은 시간동안, 정해놓은 앱을 사용하기로 계획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계획은 무참히 실패했다. 그냥 실패한 것도 아니고 대실패였다. 계획한 첫 날은 내가 정해놓은 시간동안, 정해놓은 앱을 쓰는 것이 가능했지만, 며칠이 지나면 다시 스마트폰에 한참 빠져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좋아하는 채널의 영상을 보고 난 후에도 조회수를 뽑기 위한 유튜버의 계략에 빠져(실은 대기업의 계략이라고 하는게 정확하다.) 연쇄적으로 영상을 시청하게 되었다. 트위터도 마찬가지였다. SNS는 뉴스보다도 소식이 빠르기 때문에 무슨 소식이 있나 돌아다니다보면 시간이 사라져있었다. 내 생각을 적는 것도 멈출 수 없었다.
재미있어서 다시 빠져들고, 사람들의 공격적 발언에 괜시리 상처받고, 세상을 걱정하고, 우리나라엔 정상인들이 없는걸까 의심하고, 기분이 안좋아지고, 소셜 미디어를 줄이고자 결심하고, 잘 참는듯 하다가 다시 빠져들고... 무한반복이었다. 하지만 이 시도가 나에게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스마트폰에 너무 깊이 빠져있다는걸 알게되었고, 이것을 해결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결심이 무색하게도 많은 시도와 실패를 거듭하고있던 때, 우리나라에 대선이라는 큰 이벤트가 다가오고 있었다. 대선이 다가오자 후보들은 포퓰리즘 공약들을 내세워 2030들의 표심을 공략하고 있었고(커뮤니티 사람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꽤나 큰 충격을 받았다.) 댓글들은 말그대로 시궁창이었다. 남자/여자, 여당/야당의 구도로 서로를 열심히 헐뜯으면서 싸워댔다. 남녀노소 모두가 이용하는 플랫폼에서 이런 혐오발언이 난무한다면 과연 어린이들은 무엇을 보고 배우게될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도 이런 저급한 내용의 영상을 보며 생각을 키워나갈텐데 큰 문제 아닐까, 우리나라 이대로 괜찮은걸까 등등등 어느샌가 내가 너무 많은 걱정에 사로잡혀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너무 피하고 싶었다. 더 이상 세상을 편향된 시각으로 보고싶지 않았고, 싸움을 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사람들의 터무니없는 말들에 화내봤자 바꿀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나는 댓글을 쓰고 싶지 않았고, 싸움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정당에 가입한 사람도 아니었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대한 반대입장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표할만큼의 영향력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난 그냥 화가 난 사람이었다. 이름모를 사람들이 싸우는 모습에서 너무나도 일방적인 타격을 입은 것이다. 나에게 당장 필요한건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 애초 내가 여러 소셜 미디어를 이용하기 시작한 목적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소셜 미디어가 그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생각을 정리한답시고 트위터에 많은 트윗을 올리고도 생각의 순환고리를 끊어내지 못한 것 또한 문제였다. 그것도 별로 나를 위한 일이 아니었다.
소셜 미디어를 끊어야겠다는 확실한 동기가 생기니 조금 더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었다. 칼 뉴포트의 '디지털 미니멀리즘'이라는 책을 빌려서 읽었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내가 얼마나 미디어에 휘둘리는 삶을 살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책에서 제시했던 평균 8시간 이상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10대들의 우울증, 무기력증 비율이 급등했다는 연구결과는 아니러니하게도 디지털 미니멀리즘의 결과로 많은 변화가 생길 수도 있다는 희망이 되었다.
현재는 신문을 구독해서 읽고 있다. 세상의 소식을 정제된 글로 읽으니 부수적인 감정들에 휘둘리지 않는다. (신문을 읽어도 화날 때가 있지만, 적어도 타인에 의해 감정이 동요될때보다 훨씬 낫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이지만 이어져있던 많은 사람들과의 교류를 멈추니 정리된 기분이었다. 많은 사람들과의 연결고리를 한 번에 끊어내면 외로워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이전보다 더 충만해졌다. 카톡도 거의 하지 않는다. 가끔 전화와 문자만 이용하게되었다고 친한 친구들에게만 말해놓았다. 친구들과의 연락빈도가 적어졌지만, 서운한 감정이 들거나 외롭지 않았다. 오히려 가끔 하는 연락이 반갑다. 타인에 의해 감정을 소모하지 않게 된 것 같다.
하루가 엄청 길어졌다. 하루, 일주일, 한달, 일년이 빠르게 가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소셜 미디어의 사용이 큰 영향을 주었던 것이었다. 휴일이 이전만큼 순식간에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 좋다. 무료함을 견디지 못하고 화면에 의존하다보니 시간을 빠르게 감는 효과를 보았던 것 같다.
시간이 많아지니 내가 하고자하는 것을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다시 생겼다. 자기통제력과 자기효능감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나에게 이 믿음은 너무나 중요한 것이었다. 과거의 자신없던 마음을 접기위해 난잡했던 방을 싹 정리했고, 책상과 함께 나에 대한 믿음도 한층 넓어졌다.
글을 읽는 시간과 글을 쓰는 시간이 늘었다. 글을 읽는 방식에 스스로 불만이 많았는데 독해와 논리를 연구할 시간이 늘었기 때문에 더 나아질 수 있을 것 같다. 블로그도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잠을 푹 자게 된 것, 휴식을 휴식답게 취할 수 있게 된 것, 사소한 일에도 웃음이 많아진 것, 남과의 비교를 멈추게 된 것,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된 것, 한적하고 나직한 기분을 오랜만에 다시 느껴본 것 등 많은 것을 얻었다. 전과 비교하여 달라진 것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에 인터넷에 빠져살던 때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이제는 스마트폰을 하지 않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어졌다.
내 삶에서 미디어는 다시 조그마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미디어 매체를 끊고나서 보이는 나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집중력'이었다. 암기하는 속도, 글을 이해하는 속도가 현저히 떨어졌다는 것을 느꼈다. 미디어 매체를 사용하지 않으면 금방 다시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던 과거의 생각들은 모두 착각이었다. 뇌과학 서적들에서 항상 주장했던 '뇌는 사용하지 않을수록 <영구적>으로 퇴화한다.'는 말을 확실히 체감하고 있다. 디지털 미니멀리즘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긴 하지만, 모두가 피쳐폰을 쓰던 시절의 영리함과 집중력을 되찾으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 같다.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 여러가지 시도를 해봤지만, 이만큼 나를 통제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던 시도는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의 나는 부정적인 기운을 털어내고 다시금 긍정적이고 많이 웃는 사람으로 탈바꿈하는 중이다. 이 추세를 이어가고, 다시는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디지털 미니멀리스트로서의 삶을 꾸준히 살아나갈 것이다.
+) 어쩌면 미디어가 나의 불안증세에 부채질을 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이 심화되고 그에 따르는 우울이 커지는건 당연한 수순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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