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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콜라/일상다반사

220317 불안을 인정한 날

by cola_ 2022. 3. 18.

내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리고 싶은 생각은 항상 있었다. 생각은 많은데 용기는 나지 않더라.

다른 사람들에게 내 글을 보여주고 싶으면서도 보여주기 싫은 이 모순은 뭘까. 그건 아마도 내가 다른 사람에게 좋은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어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가 '강원국의 글쓰기'에서 본 문장이 뼈를 때려서 노트북을 연다.

'당신이 쓴 글에 다른 사람은 그다지 관심 없다. 당신이 다른 사람 글에 크게 관심 없는 것처럼' 

 

내 불안은 어릴적부터 이어져왔던 것 같다. 겁이많고 작은 것에도 두려움에 떠는 아이였다. 성인이 되어 불안이 심해지면서 불안의 이유를 밝혀보려 노력해봤다. 스스로 '선천적 기질이 불안이 높은 아이'였기 때문이라고 일단락 지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확실한 계기가 있었음을 알고있다.

그래, 난 처음부터 불안에 떠는 아이가 아니었다.

 

각설하고, 불안이 커지면서 어느순간 내가 최악의 순간을 너무 많이 상상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뒤에 따르는 우울도 견디기 힘들었던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우울의 크기가 많이 죽었다. 오히려 우울함이 사라지니 해결해봐야겠다는 의지가 살아났다. 다행인 일이다. 그 전까지는 내 안의 불안과 우울을 인정하기가 싫었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 것 또한 피하고 싶었다. 내가 마음의 병이 있다고 인정하는게 내 스스로를 미친사람으로 못박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상했다. 나는 정신과에서 치료를 받는 사람들에 대해 그다지 편견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정도로 싫어했으니 말이다. 돌이켜보면 나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것도 불안의 증세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어제는 용기를 내서 병원에 다녀왔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무서웠다. 일단 다른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자세하게 풀어놓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심한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내가 20여년간 속에만 품어왔던 불안의 원인을 엄마한테 처음으로 말했다. 조금은 충동적이었다. 모르는 사람에게 그 중요한 문제를 먼저 털어놓아야한다는게 불합리하게 다가왔기 때문에 마음이 급해졌던 것 같다. 결국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울었다.

 

개인적으로 병원의 이름이 참 마음에 안들었다. 공포영화에서나 보던 무시무시한 정신병원 또는 사이비 종교 이름 같다고 생각했다.

병원은 아담했다. 그냥 조금 깔끔한 동네 학원같은 분위기였다. 예약을 하지 않고 가서 많이 기다려야 할 줄 알았는데, 접수하고 얼마 뒤 이름이 호명됐다.

진료실로 들어가니 불안이 너무 커졌다. 할말은 많은데 의사선생님이 충분히 기다려주지 않고 처방전만 대충 써서 내보낼까봐 걱정했다. 마음이 급해지니 손도 떨리고 목소리도 떨리고...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준비해온 할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잠도 못자고 생각했는데 이만한 낭패가 없었다. 다행히도 의사선생님은 '천천히 말씀하시면되죠. 급하게 말할 필요가 있나요.' 하시며 안심시켜주셨다. 확실히 회전율이 빨라야하는 동네 외, 내과 진료랑은 분위기가 다르구나 싶었다. 덕분에 떠듬떠듬 내 이야기를 해볼 수 있었다. 눈물이 나올 줄 알았는데,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울어서 그런지 눈물이 나진 않았다.

 

의사선생님은 내게 약을 먹으면 많이 좋아질 것이라고 하셨다. 약 먹는 기간을 여쭤보니 몇 개월은 먹어야 한다고 하셨다. 아무래도 불안장애 약은 부작용도 심하고 단약 시 금단현상도 있다고해서 너무 오래 먹지 않았음 했다. 물론 그건 내 상태에 달린거겠지.

 

결론적으로! 나는 치료를 시작하기로 한 것이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약을 먹고 생각이 최악의 순간까지 흐르지 않는걸 경험했고, 이에 적잖이 놀랐다. 항상 최악의 순간까지 생각이 흐르는걸 멈출 수가 없었는데, 생각의 물꼬를 트고 조금 있어서 생각이 뚝 끊기는 느낌이다. 조금지나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려고 했는지 기억도 흐릿해진다. 이 약 부작용에 기억력 장애가 있다고 하는데, 대충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 오래 먹으면 확실히 안좋을 것 같긴하다.

 

다음주에 또 병원에 가야한다. 그때는 내 상태 확인과 더불어 체크리스트 작성한 것에 기반한 상담을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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