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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콜라/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룰루 밀러

by cola_ 2022. 3. 8.

책 제목: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 룰루 밀러
옮긴이: 정지인
출판사: 곰출판
출간일자: 21.12.17.

얼마만에 읽어보는 가슴뛰는 책인지 모르겠다.
일단 너무 추천하고 싶은 책이라고 말하고 시작하고 싶다. 그만큼 마음에 들었다는 의미다.

나는 이 책을 유튜버 겨울서점님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다. 영상 초반에 겨울님이 하셨던 이 책에 대해 아무 정보도 찾지말고 보라는 말이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댓글에 달린 리뷰들이 망설임 없이 책을 고르게끔 만들었다. 그래서 정말 아무것도 모른채로 읽어보고 싶어서 겨울님의 영상도 초반만 봤다.(미안해요 겨울님) 이 책은 어느새 서점의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었고, 정말 아무것도 알아보지 않고 책을 사러갔던 나는 이 책이 당연히 소설책인 줄 알았다. 하지만 과학 분야 서적으로 분류되어있는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뇌과학 이외의 과학책을 즐겨읽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살짝 걱정했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이 책을 시작으로 다양한 과학책을 접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했다.
나도 겨울님과 여러 리뷰어들의 의견에 한마디 덧붙이자면, 이 책을 읽기 전이라면 그냥 아무 정보 없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책에 나오는 인물들에 대해 알아보거나, 줄거리를 알아보는 것은 전적으로 비추한다!

책의 저자는 룰루 밀러. 이 사람은 과학 저널리스트이자, 삶에 대한 회의로 가득한 인물이다. 우울증에 빠져 어릴적부터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고, 실제로 머릿속 가득했던 죽음의 제안을 받아들여 자살시도도 마다치 않았다.
어릴 적 아버지에게 들었던 '우리는 중요하지 않아'라는 말이 뇌리에 박혀서, 이런 하찮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삶을 영위해나가는 사람들은 어떤 원동력으로 나아가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리하여 그녀는 과거 분류학자로 일했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학자의 생애에 대해 파헤치기 시작한다.
데이비드는 유년시절부터 쓸데없는 일이라고 여겨졌던 분류학에 시간을 쏟는 것에 여념이 없었다. 사람들이 쓸데없는 식물이라고 치부했던 식물들에게도 애정을 쏟으며, '숨어있는 보잘것없는 것들'을 소중히여겼다. 추후에 성인이 되고 나서는 루이 아가시를 만나서 본격적으로 이름없는 물고기들에 이름을 붙이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아내의 죽음, 딸과 아들의 죽음, 동료들의 죽음, 번개, 지진으로 인한 30여년의 연구자료의 소실 등의 하늘의 장난도 그를 멈추지 못했다. 그는 물고기들의 배를 가르고 장기들을 보면서 이 물고기가 어느 생물의 기원이 되고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그릿'의 원천은 뭐였을까. 이 책은 그저 노력하는 모습의 중요성에 대해 다루고 있지 않다. 계속해서 나아가는 원동력이 무엇이었을지 한층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그의 명성과 평판 말고도, 그의 숨어있는 일화들을 찾아내서 결국 밀러는 논리적 이유를 찾아내는 것에 성공한다. 정확히는 데이비드의 명성 뒤에 감추어진 어리석음을 찾아냄으로써, 그의 분류학에 대한 끝없는 열정은 강박증세였음을 밝혀낸다. 그가 자신의 유전자풀에 대한 주장을 강력히 하기위해('부적합자'의 자손을 남기는 것을 막고, 우월한 유전자의 인간들만을 번식시켜서 인간을 더욱 우월한 존재로 만들어야한다는 주장. 책에서는 '우생학'이라고 일컫는다.)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몰두해왔던 물고기 분류는, 그가 진실을 외면하면서까지 우월함을 내세우며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 노력했던 것들이이었고, 결국 이 노력들은 데이비드를 높은 위치에 자리잡을 수 있게 하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많은 연구를 거치면서, 애초 '어류'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우리가 생명의 나무에서 뻗어난 가지들에 이름을 붙이는 과정들은 그저 우리의 '편리'를 위한 과정에 불과하며, 데이비드가 여러 사람들의 피와 상처로 일군 계층화 작업이 결코 세상의 진실을 파헤지는 과정이 아니라 사람들의 직관과 상상에 의한 작업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책을 읽으면 데이비드의 구체적인 생애와 룰루의 깊은 내면 속 생각을 엿볼 수 있는데, 이로부터 얻는게 참 많다.
과학에는 '진실'이 없다는 것. 과거의 사람들이 참 많은 실수들을 반복했는데, 그 중 가장 큰 실수가 그들이 정의한 모든 것들을 '진실'로서 규명했다는 점이다. 세상에는 진실이 없다. 책에 나오는 철학자 메릭스는 눈앞에 있는 의자의 존재도 의심했다. 사람들은 그의 사고에 상당한 의문을 가졌지만, 그만큼 세상에 확실한 것은 없다는 그의 회의가 반영된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중요하다는 것. 우주의 티끌만한 우리가 전혀 중요하지 않는 것은 맞지만, 사람의 존재란 각기 다른 관점에서 중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우리가 직관을 피하고 '진실'된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인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가 우리보다 어리석고 지능이 낮다고 말해왔던 다양한 생물들이 사실 우리보다 더 좋은 능력들을 많이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인간보다 기억력이 뛰어난 생물들, 인간보다 일부일처제의 비율이 높은 생물들, 인간보다 월등한 치유력을 가지고 있는 생물들 등등등...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지닌 생물들이지만, 우리들은 그들이 사용하는 도구는 인간의 것들과 질이 다름으로 그들의 하등함을 규정짓고, 그들이 하는 사랑은 그저 본능으로 취급하고, 그들의 좋은 두뇌는 생존의 방식으로써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우월과 하등의 구분 또한 우리가 판단하고 우리가 결정해온 일이라는 것을 잘 알면 세상 속의 넓은 세상을 바라볼 기회를 가지게된다.
이 외에도 세상에 존재하는 혼돈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인지, 자신이 생각했던 이상적인 사랑에서 벗어난 사랑을 이어나가도 괜찮은지, 그리고 사람의 직관이란 어떤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좁히는지 등... 한 인물의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정말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다. 이 책을 모두 읽을 때, 비로소 이 책의 제목인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문장에 경이를 느끼게 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트이게 해준 책. 철학에 관심이 많다면 과학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재미있는 책이 될 것이다. 삶에 회의를 느끼는 사람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나의 문장력이 이 책에 대한 감상을 다 담기에는 너무 부족한 것 같아 아쉬울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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